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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상하차 후기: 못다한 이야기

택배 상하차에 지원했다. 돈이 필요했고,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 싫었다. 처음에는 ‘내가 언제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해 보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막상 지원하고 보니, 내가 어쩌다가 상하차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됐나... 몸 상할 텐데... 싶었다. 약간은 비참했다.

이미 밤낮이 바뀐 채 엉망으로 지냈었다. 야간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차라리 생산적이었다. 그래도 남들은 새벽 6에 출근하며 보람을 느낄 텐데, 나는 저녁 6시에 출근하며 뿌듯해하다니... 출근하는 기분이 산뜻했지만 동시에 씁쓸했다.

물류센터는 춥고, 크고, 예뻤다. 특히 시멘트 벽에 연보라색 헬멧이 가지런히 걸려 있던 건 잘 구성된 전시회를 온 것 마냥 예뻐 보였다. (물류 창고가 예쁠 리가 없다. 신나서 예뻐 보였을 뿐)

목장갑을 끼고 헬멧을 쓰고. 내가 하는 일은 분류였다. 바로 옆에는 내가 분류한 택배를 상차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분은 회색 헬멧을 쓴 베테랑. 한 분은 나와 같은 주황색 헬멧을 쓴 신규였다.

일은 많이 힘들었다. 너무 추운 날씨였고,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곳이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일한 탓에 3일 동안 어깨가 뻐근했다. 뭣도 모르고 내복을 안 입은, 속 없는 23살이었다. 몇 시간 내내 무거운 택배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미느라 허리가 아팠다. 걷는 것조차 허리가 아파서 뒤뚱거릴 정도였으니...

그곳은 너무 현실이었다. 사람들은 찬 공기를 맞으며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위이잉-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소리가 새벽의 고요보다 익숙한 곳. 괴물 소리를 내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끊임없이 내려오는 상자들.

과로사로 택배 기사가 숨졌다는 기사가 그때 내 뇌리를 스쳤던 건 왜일까. 살인적인 업무량을 체감하고서야 왜 택배업계 종사자들이 과로사로 숨지는지 십분 이해했다. 나는 분노를 느꼈다. 전에도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감정은 아니었다. 이제는 함께 분노하고 연대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곳의 정은 어디에서 봤던 것보다도 따뜻했다. 베테랑 아저씨. 그 분은 나의 쉬는 시간을 관리하셨다. 사실 그 곳에서 쉬는 시간 같은 건 애초에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컨베이어 벨트가 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나에게 쉴 시간을 주셨다. 나한테 대구 말씨로 “좀 쉬었다 오세요”라고 말하시고는, 밀려 드는 상자는 본인이 분류하셨다. 내가 앉아 있다가 오면 아저씨는 바로 다시 상차를 하셨다. 아저씨의 쉬는 시간은 없었다. 그저 컨베이어 벨트 위로 상자가 조금 덜 올 때 담배 피우러 다녀오는 2~3분, 그때가 상차하는 분들의 쉬는 시간이었다.

당연히, 당연히 상차가 분류보다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상차를 맡은 두 사람은 분류 업무까지 나서서 도와줬다. 내가 실수를 할 때에도 나를 꾸짖거나 눈치주지 않았다. 묵묵히 본인이 할 일을 해냈다.

생수 묶음이나 과일 상자를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무 젊어 보이던 신규가 이걸 들어 싣는다고 생각하면 그게 싫었다. 나 대신 분류까지 해주느라 정작 본인은 쉴 틈이 없는 아저씨가 이걸 상차한다고 생각하면 서러워졌다.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엄살부리지 않고 화물 트럭 3대를 넘게 채우셨다. 그 추위에 목장갑 하나 끼고 몇시간 동안 상차 업무라니.. 상하차는 젊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돈이 궁하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무엇이 그들을 한파 속에서 움직이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이유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잘 정비된 몸과 강한 생활력,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투지가 있어야만 버틸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물류 창고에 지원하고 잠깐 비참했던 이유는 택배 종사자를 낮잡아 보는 마음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택배 종사자분들의 수고와 헌신을. 그들은 모두 영웅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편리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항상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택배 종사자를 대하겠노라 다짐했다.

또 하나 일하며 느낀 것은, 분류 작업은 곧 기계가 할 거라는 강한 예감이었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숫자 12와 7을 구분해서 밀어주는 작업은 아주 간단하다. 언제든지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 그걸 24시간 내내 사람이 하다니, 인력 낭비인 셈이다. 기계 발명과 운송장 체계 개혁, 기계 설치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서 쉬이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물류 산업은 점점 덩치가 커져 가고 있고,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고된 일이다. 이런 생각 끝에 고개를 들어 물류센터를 보았다. 창고를 메운 사람들이 모두 조만간 실업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졌다.